가나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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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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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1. 심장멎은 택시기사와 착한 사마리아 법

II. 배경

1. 율법사의 질문: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25절)
1) 시험의 의도
2) 영생에 대한 착각

2. 예수님의 반문: 율법을 어떻게 읽었는가?(26절)
3. 율법사의 답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27절)
4. 예수님의 답변: 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28절)
5. 율법사의 질문: 누가 내 이웃인가?(29절)
1) 유혹: 옳게 보이려고
2) 유대인의 이웃
유대인들의 관계의 원은 이렇습니다. 원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직계가족과 친척이 있습니다. 그리고 맨 가장자리에는 유대인의 후예 혹은 유대교 개종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이웃개념’입니다.

3) 사마리아인
따라서, 이방인들은 이웃의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특히,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아예 ‘사람취급’을 안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지난 기원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 혼혈집단이 되었다는 역사적 배경때문에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헀고, 그 지역을 거치지 않기 위해 아예 멀리 돌아가기까지 했습니다. 이 율법사가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은 나는 이미 ‘그런 내 이웃’들을 잘 챙기고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겁니다.

III. 예수님의 비유

이 대답을 듣고,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1.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한 사람(30절)
1) 여리고길
2) the 사람의 저항(30절)

2. 제사장(31절)
1) 1세기 제사장 소개와 상황
2) 피해서 돌아간 이유
왜 그랬을까요? 제사장의 의식법 때문입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면 안되었던 것이지요. 만약, 그 사람을 돕기라도 한다면, 기껏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여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부정해지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일주일 가량의 정결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그 동안 제사업무를 보고 가지고 가는 십일조 제물을 먹을 수도 없고, 걷을 수도 없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똑같은 상황에 곤란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또, 행여라도 그 사람이 자신의 옷을 만지면, 비싼 제사장의 옷도 버리고 다시 맞춰야 하는 손해가 예상됩니다.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이미 죽었거나, 유대인은 아닐 것이라며, 합리화 했을 수도 있는 일이지요.
3) 적용 1

3. 레위사람(32절)
1) 소개와 상황
제사장이 지나가고, 이어 레위사람이 같은 장소를 지나게 됩니다. 그도 역시 ‘성전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쓰러져 있던 그를 보고, 지나가 버립니다. 하지만, 제사장과 같은 이유로 도움주기를 외면합니다.

2) 돌아간 이유
게다가, 레위인은 제사장을 옆에서 돕는 자들입니다.그 앞길을 갔던 제사장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 제사장의 보조였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섬기는 제사장도 그냥 지나간 것으로 보아, 자기도 더 쉽게, 양심의 가책없이, 지나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행여라도, 제사장이 돌보지 않은 사람을, 자신이 데려가면, 그 제사장의 체면은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3) 적용2
비유를 듣고 있던 청중들은 이 제사장과 레위사람이 참 속물이라고 수근거렸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이어 등장할 사람은, ‘바리새인’ 이나 ‘랍비’가 등장해서 반전을 시킬 것이라고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의외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자신들이 사람 취급도 안했던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는 겁니다.

4. 사마리아인(33절)
1) 소개와 상황
이 사마리아 인은 그냥 ‘여행’,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 그가 그 유대인이 쓰러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것을 보았으면서’ 이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겨(긍휼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행동(34-35절)
그래서, 그는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다가갔고’, 그의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했습니다. 또, 자신의 짐승에 그를 ‘태웠습니다’, 한 여관에 데려가 ‘방을 잡아주고’, 그를 하룻밤 동안 ‘보살폈습니다.’ 게다가, 다음날, 자신이 떠나면서, 여관 주인에게, ‘2데나리온’을 꺼내어 지불합니다. 2데나리온은 하루, 이틀치의 수입입니다. 그 돈을 주면서, 다친 사람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며, 돈이 더 들거든, 돌아오는 길에 지불해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납니다.

3) 의미
당시에는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노예’로 팔릴 수 있었습니다. 여관에 묵던 사람도 여관비를 내지 못하는 경우, 나쁜 주인들은 이들을 노예로 팔기도 했습니다. 이 다친 사람은 기력도 없고, 심지어 옷도 없었습니다. 그런 자를 위해, 사마리아인은 일부를 먼저 내고, 잔금을 나중에 주겠다는 일종의 ‘안전장치’까지 제공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앞선 ‘예배를 드리고 오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 행하였습니다. 그는, 첫째, 부상당한 사람이 ‘유대인인지 로마인인지 따지지도 않습니다. 종교와 계층이 전혀 문제가 안되었습니다. 둘째,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활용(기름, 포도주, 천, 짐승, 시간, 힘과 돈)하여 도왔습니다. 셋째,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오히려 사마리안인으로서 유대인 지경에서 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합니다.
4) 적용3

IV. 예수님의 질문: 누가 강도맞은 자의 이웃이겠는가?(36절)

1. 가서 이와 같이 하라
2. 성경의 이웃
우리의 이웃이란, 결코 ‘매력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성경의 이웃’은 벌거벗겨지고, 거의 죽은 자로 나타납니다. 헐벗고, 고통받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며, 울고 있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46에,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느냐, 세리도 이와 같이 하고,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사에게, 다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걸 누가 못하느냐는 겁니다.

V. 질문

1.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이에 질문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나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혹시 우리 교회 사람이면 우리 편이고, 다른 교회 사람은 이웃이 아닙니까?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던 ‘제사장’과 ‘레위인’, 반면에, 그냥 여행가다가 쓰러진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인’ 중에, 세상 사람들은 누가 ‘더’ 진정한 이웃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2. 책, 산둥수용소와 장애우 학교 기사
3. 나는 자유로운가? 밑집 할머니

VI. 적용

1. 예수의 사랑
하지만, 오늘 이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십자가로, 댓가없는 희생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훗날, 이 땅의 그 수고가 더 들거든, 내가 돌아와서 다 갚아주겠다는 그 약속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이웃으로서의 모습입니다.
2. 정리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질문을 이렇게 해 봐야 합니다. ‘누가 내 이웃인가?’이기 전에, ‘나는 누구에게 어떤 이웃이 되고 있는가?

아울러, ‘어떤 사람이 우리교회 성도로 왔으면 하고 바라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고민을 바꿔서, ‘우리는, 교회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어떤 성도가 되어줄 것인지’를 고민해야합니다.

이 사마리아인을 바라보던 여관주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그것이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아닐까? 그리고 그 다쳤던 유대인은 회복된 후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은 깨졌을까?

VII. 결론

1. 70인의 파송
오늘 본문은 the 예수님이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하였다가, 이들이 돌아와 사역보고를 하는 내용의 맥락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 길 위의 예수님과 기독교
3. 대강절의 빛
오늘은 12월의 첫째주일이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하고 기다리는 의미의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그 성탄의 빛을 우리는 무엇으로 밝히려 하고 있습니까? 오늘 크리스마스 트리도 밝혔지만, 무엇보다도,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삶으로 그 분의 길을 밝힐 수 있는 성도와 교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