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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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진리없는 교육, 신앙, 목적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확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모습, 큰아들의 모습, 이 두 아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두 아들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의 마음, 그것을 깨닫고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이 가져야할 삶의 목적이 아닐까요.

아버지의 마음

램브란트 – 탕자의 귀향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영문)

아버지의 슬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아직 살아계신 아버지에서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합니다. 그 당시 이러한 행위는 자식의 상속권한을 박탈할 수 있는 매우 무례한 행위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를 허락하고 재산을 아들들에게 분배합니다.
둘 째 아들은 이를 받자마자 재산을 현금화하여 먼 나라(이방인의 세계 –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로 떠나고 그곳에서 허랑방탕하게 재산을 탕진하며 살아갑니다.

왜 그 재산을 가지고 떠났을까요? 아버지를 떠나서 자기 하고 싶은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가치와 규범을 버리는 행위였습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모습, 둘째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행동을 타이르고 설명해 보았지만 둘째 아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인 처럼) 이때 아버지의 마음은 ‘아픔’ 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깨달음을 얻도록 집을 떠나 그렇게 허랑방탕하게 사는것을 그냥 묵묵히 바라봅니다. – 다 알지만 모르는척 감싸주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쁨

다 써버린 돈, 돼지의 사료를 먹으며 둘째 아들은 연명을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봐주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 버린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깨달음을 얻고 제정신으로 돌아옵니다.이제 아들에게 남은 2가지 선택 – 남아서 죽느냐, 돌아가느냐. 결국 후자를 선택하고 아버지에게 돌아갑니다. (회귀) 19절에 보면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종”으로 여겨달라는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있던 3단계의 노예 계급 중 가장 낮은 품꾼, 그러한 노비로서 살아가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두렵지만 아버지에 대한 간절함과 기대를 가지고 돌아갑니다. 이에 아버지는, 누가복음 20절에  “아직 거리가 남았는데도 아버지는 탕자 아들에게 뛰어나와…” 기쁨으로 아들을 맞이합니다.

22절 :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신분의 복권 – 노비가 아닌 아들로서)

24절 :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렇게 생각하는 아버지) 아들의 귀향

27절 : 살찐 송아지를 잡아 돌아온 아들을 환대해 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배은망덕한 첫째 아들

28절 : 아버지의 권유를 거절하는 첫째 아들의 모습

29절 ~ 30절
자신과 둘째 아들을 차별한다고 생각하는 첫째 아들의 모습. 둘째는 나누어준 재산을 창기와 탕진했음에도 돌아와 송아지로 환대해 주시는데 자신은 왜 홀대를 하느냐며 화를 냅니다.

31절 : 아버지는 “결국 이 재산들은 모두 네 것이다” 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

목적있는 삶

이 첫째 아들은 바리새인을 상징합니다. 지난날의 은혜, 감격을 잊고 자기중심의 신앙, 권위에 사로잡혀사는 삶. 혹시 이런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어떠한 말씀, 복음, 찬양으로도 내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그런 상황은 아닌지요?

현대인들은 진리없는 교육, 신앙, 목적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확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모습, 큰아들의 모습, 이 두 아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두 아들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의 마음, 그것을 깨닫고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이 가져야할 삶의 목적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