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 십년만의 외출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말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번 2개월간의 한국 방문에서 보고 겪은 모든 것에 분명 이야기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울에 있을 동안 분당의 중앙공원은 아침마다 산책했던 장소다. 어느 날도 같은 시간에 중앙공원을 걷는데 야산에 만들어진 샛길을 걷고 있었다. 마른하늘 마른 땅인데 큼직한 지렁이 두 마리가 죽어있었다. 한데 사모가 그 두 마리의 지렁이에 얽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즉, 두 마리의 지렁이는 남편과 아내 지렁이인데 어젯밤 땅속 자기 집에서 싸웠단다. 남편 지렁이가 무지무지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와 야산 샛길로 나왔다 무지한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었단다.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다. 밤새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 지렁이가 아침에 나와 보았다. 남편이 죽어있는 것 아닌가? 옆에서 울다 울다보니 아침 태양빛이 너무 뜨거워 호흡하기 어렵고 그러다 말라 죽은 것이란다.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하면서도 “그것 말 되네.”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실제 2개월의 한국 방문에는 모든 사건들에 일들에 신기하게도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비록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야 일상이겠지만 십년만의 외출해온 이방인 2중 이방인에게는 신기한 이야기꺼리였던 것이다.
내가 있던 곳에서 두 블럭만 가면 롯데 백화점이 있고 지하철 타는 곳이 있다. 게다가 그 곳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이다. 그러니 그 길에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그 길에 사지를 못 쓰는 거지가 누더기 걸치고 엎드려져 있고 앞에 깡통이 놓여있다. 사람들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어느 날도 그 옆을 지나는데 예의 그 거지가 혼자 낄낄거리며 야단이다. 가만히 보니 이 거지도 핸드폰을 갖고 있는데 핸드폰을 켜고 개그콘서트라도 보는지 완전 삼매경이다. 동전도 자비의 강통도 이 거지에게는 하등 관심이 없다. 스마트폰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거지는 미국에 사는 우리보다 훨씬 더 IT에 대해서 앞서는 것이다. 하긴 전철 혹은 버스를 타보라. 앉자마자 폰을 꺼내들고 내릴 때까지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전철에서는 더구나 서 있는 사람들도 두 다리를 버팀목하고 양 손으로는 핸드폰을 그리고 귀에는 리시버가 끼어있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저들은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난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지하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에게 서울의 지하철은 많은 이야기가 된다. 시카고의 지하철을 몇 번 타본 일이 있다. 지저분하고 어쩐지 범죄에 노출된 듯한 어두움 등등 별로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런데 서울의 지하철은 그렇게 쾌적할 수 없다. 롯데 백화점 지하철 안내에서 받은 서울 지하철 약도 한 장만 갖고 있으니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 가나안 식구들 몇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어디서 모일까? 이때 내가 한 약속은 “강남에 있는 역삼동 지하철 7번 입구”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치과에 다녀왔던 기억이 나서 말했는데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모인 것이다. 길 가다 화장실 가고 싶다면 좀 참아 지하철 입구를 찾아라. 내려가면 옛날 황제도 사용해 보지 못한 깨끗함과 정갈한 장소의 화장실이 있다.
그렇다. 화장실 이야기다. 서울 사는 이들은 이게 이야기 꺼리가 될 수 없을지 모르나 이방인에게는 놀랄 이야기다.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놀란 일이다. 즉, 곳곳마다 화장실이 어떻게나 깨끗하고 정갈한지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다. 가령 시카고에서 경험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무실 치과병원 아니면 의사 사무실에서 화장실 가고 싶다면 사무원이 열쇠를 하나 주면서 이렇게 저렇게 돌아가면 있습니다 그런다. 그래서 가면 잠겨있다. 키가 없으면 들어 갈 수가 없다. 일을 마친 후 키는 다시 반납한다. 내가 화장실 가는 것도 다 노출되는 것이다. 얼마나 궁색한지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 화장지들이 널려있다. 지저분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내가 가본 곳은 어느 곳이던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구의 재래시장 칠성시장을 찾았을 때다. 어릴 적 기억은 비로 인해 질척거려 지저분한 곳이다. 그런데 이 칠성시장 2층 화장실을 찾았을 때도 똑같이 놀란 것이 아 화장실 참 깨끗하구나 였다. 그 중에 제일은 김포공항 일층 동쪽 화장실 가보라. 어느 회장실의 사무실 같이 넓고 깨끗하고 청결했다.
김포공항도 이야기가 있다. 제주도 예약을 하고 공항에 갔더니 현장의 기상악화로 기다려야 했다. 점심도 심지어 저녁까지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까지 김포공항 일층 서쪽의 식당을 사용했다. 8500원하는 한우 국밥 말이다. 두 번째 부터는 두 사람 분 대신 한사람 분 시키며 밥 한 그릇만 더하면 9500원이다. 우리 부부가 실컷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양만 아니라 맛도 있고 분위기도 그럴 수 없이 쾌적한 곳이다. 팁도 텍스도 따로 낼 필요가 없다. 얼마나 훌륭한 식사인지 그래서 김포공항의 식당이 나에게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곳곳마다 상황마다 나에게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