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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만의 외출 – (5)

그랬다. 서울에서는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이긴단다. 가령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다 하자. 누가 잘 잘못 보담은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기고 옳다는 말이다. 옛날부터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지금은 이렇게 해석되는 것이리라.

2개월간의 고국 방문 중 이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나도 큰소리 쳐본 일이 있었다. 분당에 있는 중앙공원에서다. 그것도 이른 아침이다. 미국의 공원과 다른 게 있다면 한국에서의 공원에도 운동 기구들 어른들을 위한 운동 기구들이 여기저기 무슨 경쟁이라도 하듯 만들어 둔 곳들이 있다. 누가 운동할 텐데 이곳에 이런 기구들이 있을까 의문되는 저 울진의 산길에서도 보았다. 게다가 발바닥 마사지를 위한 시멘트 위에 돌출한 돌멩이들도 곳곳에 있었다. 중앙 공원에는 이 발바닥 마사지 위한 긴 코스가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정식으로 이곳을 걸으려면 신발도 양말도 벗고 맨발로 걸으면 효과가 있으리라. 마지막에는 씻으라고 수도꼭지도 연결되어 있고 신장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린 그냥 신발 신은 체 그 위를 걷곤 했다. 이것이 사달의 빌미가 되었다. 더구나 집사람은 발바닥의 쿠션근육이 닳아서 신발 벗고는 아파서 걷지를 못한다. 예의 그날도 그곳까지 와서는 나는 옆에 있는 운동 기구를 사용 걷기 운동을 하는 동안 집사람은 발바닥 마사지 위를 신발 신은 체 걷고 있었다. 조금 후 한 사내의 시끄러운 음성이 들려 쳐다보니 나보다 3,4년 위의 한 노인이 집사람을 닦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왜 이곳에 신발을 신고 걷느냐? 맨발로 걸어야지!” 여러 사람 있는데서 야단을 치며 집사람을 끌고 간다. 옆의 주의 사항이 적힌 것 읽어보라 한다. 한참 큰 소리로 따라 읽던 집사람이 “여기 신발 벗으란 말은 한 마디도 없네요.” 하고 다시 걷는데 영감님 또 따라와서 이번에는 더 큰 목소리로 꾸중을 한다. 잘못은 집사람 했겠지만 은근히 내가 부아가 나면서 속에서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 장난기만 아니다. 며칠 전 울진에서 마리의 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으로 보낸 서류 때문에 대구까지 가서 대서소에서 해갖고 왔는데 와서 보니 잘못되어 있어 할 수 없이 다시 가서 말했더니 당연히 미안해 할 대서소 영감이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야단치더란다. 속에서 분이 나는데 이 때 쯤 남편이 편들어 주고 해야 하는데 도리어 “참으세요. 노인. 그만하세요.” 그게 더 화가 나서 뚜껑이 열릴 지경까지 되더란다. 어찌어찌하여 끝내고 나와서는 “그 영감 너무 했제.” 하는 소리에 완전 뚜껑이 열렸다나.

이야기 들으며 배꼽잡고 웃었는데 지금 나의 상황이 바로 그랬다. 일부러 주위 사람에게 창피주기 위해 큰소리로 야단하는데 “참으세요. 그만해주세요.” 한다면 친구 부인 짱이 날것이고 생각하다 큰소리치는 자가 이긴다는 말과 내가 목사로써 언제 한번 큰소리 친 일이 있었던가? 시카고에서 그랬다면 금방 소문이 날것이고 그 소문은 다른 루머까지 꾸며져 결국 왕따를 당하겠지만 이곳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목사라는 것도 모를 텐데 나도 한번 큰소리치자 생각하니 웃음도 나고 장난기도 발동 된 것이다. “여보영감 당신이 무언데 큰소리치오? 한번 주의를 주었으면 됐제. 왜 이래 남을 못살게 굴어요? 당신은 뭐요? 발바닥이 아파서 하는 수 없이 신발 신었다고 사정하지 않소. 그래 잘났소, 잘났어?” 얼마나 큰소리를 질렀던지 내가 놀랐다. 놀라면서 속으로는 웃음을 참느라 그게 어려웠다. 물론 상대방도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고 고래고래 대들었다. 이번에 놀란 것은 집사람이다. 내 팔을 잡아당기며 “가요, 가요.” 못이기는 척하고 그곳을 떠나며 “그봐 나도 큰 소리 치지 그래서 이겠지.” 그날 이후 중앙 공원에 갈 때면 발바닥 마사지 하는 곳은 피하고 다른 길로 갔다. 그럼 내가 진건가?

어쩌면 우리 집사람 예쁘다고 일부러 관심 끌려고 건드려 본 것은 아닌가 생각은 하지만 사실 미안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 날 난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는 사실이다. 아하!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곳곳에서 싸움박질을 큰 소리 내며 하는구나. 건강을 위한 방법이구나 생각도 된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저씨 미안하오. 내가 시카고서 워낙 큰소리 한번 지르지 못해서 그랬던 거요.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한 번도 손 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을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요/ 일을 마치고 내 죽는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는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이래 뵈도 윤동주 시인의 ‘무서운 시간’을 즐겨 읊는 목사랍니다.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