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교회

메뉴

  • 주일예배 1부 : 오전 8시 30분
  • 주일예배 2부 : 오전 11시
  • 금요예배 - 오후 8:00
  • 새벽기도 - 화 ~ 목 오전 5:45

가나안 교회

선교하는 교회 | 봉사하는 교회 | 교육하는 교회

십년만의 외출 – (7)

감격스런 통영을 뒤로하고 북으로 30여분 달리니 진주시에 도착한다. 진주라면 ‘진주라 천리길을 내어이 왔던가/ 촉석루에 달빛만 나무 기둥을 얼싸안고’ 하는 오래된 유행가 가사가 기억나는 곳. 임진왜란 때의 3대 대첩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있던 곳 그리고 기생 논개가 있던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또 하나 기독교중 신교의 보급률이 한국에서 제일 낮은 곳이라고 알고 있던 곳이다. 그러나 진주시에 들어가면서 사적지가 이렇게 많이 그리고 잘 보전된 곳에서부터 진주의 기상 민족적 기상을 느끼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신령한 힘으로 다가와 이곳이 풍수리지학상 보통의 장소가 아니구나 느껴진다.

진주성이 그 중 하나요,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 씨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국립진주 박물관도 그랬다. 마침 고려시대 향료의 특별전시가 있었다. 책에서 배운 임진왜란 때의 무기들, 철자총통, 비격진천뢰 등도 전시해 두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의 전투들 김시민 장군 곽재우 장군과 진주시민의 활략상 등이다. 진주성은 최초로 왜군으로부터 성을 지킨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민관군이 합심하여 10배가 넘는 왜군에게도 성이 함락당하지 않았던 곳이다.

진주성이라면 논개도 빠질 수 없다. 진주성 동으로 촉석문이 있고 이 문으로 들어오면 앞에 있는 누각이 촉석루다. 동서로 흐르는 강이 남강이다. 이곳에서 기생 논개가 적장을 깍지 끼고 안아 함께 남강 물에 빠져 죽은 의절 이야기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온 번영로 시인의 ‘논개’ 아닌가? 현장에서 보니 촉석루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촉석루 아래 남쪽으로 작은 돌문이 있었고 돌문으로 나가면 남강으로 연결되는 작은 돌섬이 있었다. 아마 그곳까지 내려가서 바위에서 술을 마시며 뛰어든 것이다. 박장로와 나는 그냥 촉석루에서 의암이라 부르는 바위와 남강을 바라보는데 여자들은 현장 바위까지 내려가 본다. “왜 안왔소?” 하길래 “혹 날 깍지 끼고 같이 남강으로 뛰어들까봐 무서워서 안 갔소.” 했더니 “깍지 낄 것도 없더군. 바위까지 왔다면 그냥 활짝 밀어버리면 되지 내가 왜 죽어?” 답이 돌아와 으스스했다.

이런 진주의 ‘얼’들이 모여서인지 진주의 기상이 모여서인지 진주라면 19세기 말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들이 제일 많이 배출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실제로 현대한국의 100대 기업 중 30여명이 이곳 진주에서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진주시를 벗어나기 전 지수 IC가 있다. 지수 초등학교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지수 초등학교의 1회 졸업생중 지금의 LG그룹을 일으킨 구인회 씨가 있었고 이웃 의령군에 살던 삼성의 이병철도 이곳 지수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다. 나중 1948년 삼성물산을 이병철 씨가 창업할 때 함께 공동창업자로 동참한 같은 반 친구 조홍제도 있었다. 조홍제는 나중 독립하여 지금의 효성그룹을 일으킨다. 뿐 아니라 이 학교의 4회 졸업생으로 삼양통신과 GS 그룹의 이룩한 허정군 회장도 있었다. 구석진 진주에서 배고픈 조선 사람을 살려내는데 많은 지분을 담당했다는데 고개가 숙여지는 곳이다. 실제로 그런 기상들이 그런 얼들이 서려있는 듯 한 느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이 아니란다. 양반 문화로 유명한 경북 안동에서 조선시대 두 명의 정승을 배출했다는데 자부심을 가지는 도시에 비해 이 곳 진주에서는 열한명의 정승이 나왔단다. 세상에! 그러니 재물로만 조선을 먹여 살린 것만이 아니라 우매한 민중의 안내까지 이곳 사람들이 했다는 것 아닌가?

그랬다. 진주에 대해 너무 몰랐는데 현장을 돌아보며 아아 이곳 보물 진주를 새삼 발견한 것 같았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바울이 참 믿는 자의 모습을 말해 주듯 진주가 그러했다.

진주시에 하루 머물면서 여러 기상과 얼들을 듬뿍 받아서 기쁨으로 창녕 현품을 돌아서 대구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밤 9시가 가까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