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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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일예배 1부 : 오전 8시 30분
  • 주일예배 2부 : 오전 11시
  • 금요예배 - 오후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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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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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만의 외출 – (6)

오전 9시 박장로 내외가 차를 갖고 오셨다. 오래전 함께 남해여행을 약속하였기 에다. 가나안 교회 창립멤버로 십여 년간 가나안의 초석을 쌓는데 기여한 귀한 가정이다. 오래전 역이민 대구에 정착하신 분이다. 어릴 적 교회에서 소풍을 오고했던 가장 골을 거쳐 청도 밀양으로 55번 고속도로를 따라 가락을 지나 부산까지 도착했다. 좌우의 산자락과 울창한 산림들 보며 옛날 이쪽의 헐벗어 보인 산과 비교가 된다.

부산에서 거제로 갈 때는 가덕도에서 세계 최저 터널 해저 48m 이라는 가덕해저 터널을 지나 거가대교로 연장 8Km넘는 교량을 통해 바다가 육지로 이어지는 거제도로 도착한다. 거제도는 한국에서 제주도 다음의 큰 섬이었다. 앞으로 제주도까지 터널이 생기려나?

멀리서 봐도 거대한 기중기들 삼성중공업 대우중공업의 모습이 보인다. 김영삼 전대총령의 생가를 보며 목포대첩 등 이순신 장군의 전쟁터를 체험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찾았다. 책에서만 읽어오던 현장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아픔을 가졌던가? 점심을 거제도에서 유명하다는 멍게비빔밥을 먹었다. 백만 석이라는 5층 빌딩식당에 줄을 서서 그것도 30여분 기다려 먹은 것이다. 생각해본다. 누군가 맨 처음 멍게를 먹은 사람은? 참 용기도 가상하다.

오후 거제대교를 거쳐 통영으로 왔다. 통영 앞바다가 진해바다 아닌가? 차가웠던 1월 살을 에는 추위에 맨몸으로 바다에 입수했던 한이 서린 바다다. 스무 살 해병대 신병 교육의 현장이었다. 진해 경화역에 내려 입소하던 곳 군기가 가장 센 창원의 사격 훈련장 그리고 야간훈련에 갔던 마산 일대. 수료 전주 완전 무장으로 오르던 저 천자봉이 있는 곳이라. 반세기 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저녁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는 달아 공원에서 한국에서 해지는 풍경이 제일 멋지다는 저녁 해지는 노을 구경했다. 수백 명의 관광자들이 그 순간을 보기위해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었다. 실제로 다도해의 아름다운 석양은 점점이 보이는 수많은 섬들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그날 묵은 곳이 Hotel Gallery다.

다음날 새벽같이 간 곳은 통영서 제일 높다는 미륵산이다. 한려수도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케이블카가 있었다. 미륵산 자락에 내려서는 다시 한참 계단을 고불고불 오르면 정상이 있다. 아아! 통영의 자연이 이렇게도 축복받은 장소구나. 감탄이다. 그래서 통영이 좋았다. 인구 12만의 작은 어촌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 그러나 그보다 나중 통영만 아니라 통영 사람들도 아름답구나. 어떻게 이만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잉태하였을까? 그랬다. 늘 책에서만 보아 온 아름다운 사람들을 오늘 통영 현장에서 만났으니 어찌 감격 아닐까? 그것은 사모하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고 확신이다. 물론 직접 만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묘소를 통해 기념관을 통해 만난 것이다.

거제를 떠나기 전 청마 유치환의 생가와 기념관 있었다. 통영에는 그의 ‘문학관’이 통영에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책에서 만난 분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아는 그는/ 그렇다. 그 청마가 통영 사람이었다. 통영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으로 계실 때 가사 선생님이셨던 이영도 시인에게 보낸 연설 5천여 통이라고.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랬지.

언덕길 위에 박경리 묘소가 있었다. 숨이 가쁠 만큼 올라간 언덕작리에 묘에 서면 온통 통영항구가 보이며 문외한이 봐도 좌 백호 우 청룡 같은 산세와 묘자리를 느낄 수 있었다. 25년간 걸쳐 쓴 대하소설 ‘토지’는 이곳 통영의 바로 북쪽 하동에서의 일어난 일들 아닌가?

그러고 또 시인 김춘수가 있었다. 이분이 통영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유품전시관에는 대표작 ‘꽃’이 쓰여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의 시비는 낭망산 조각 공원에도 있었다. 내려오다 음악가 윤의상 기념관도 들렸다. 좌우 사상의 희생자였지만 세계적 음악가가 이곳에서 출생했다니 이렇게라도 내가 그를 만날 수 있다니 과연 행운이었다. 통영 옻칠 미술관도 들렸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 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하여 조개로 칠기를 만드는 자개공예 12공방을 개설, 나전칠기의 중심 도시가 되었단다. 그 장인 정신이 만든 아들다운 미술품을 본다. 전혁림 같은 유명한 미술가의 영향인지 옛날 피난민들 중심해 살던 산동네, 즉 달동네에 통영의 화가들로 인해 어둡던 동네의 모든 벽에 벽화로 예술의 동네로 바뀌고 동파랑 마을의 가파른 길을 끝까지 오르며 아아 통영이 좋구나. 통영의 사람들이 좋구나. 그래서 오후에는 일부러 통영의 재래시장을 누비며 사람 냄새를 맡아본다. 남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 보다 더한 사람의 바람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