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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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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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만의 외출 – (4)

일부러 버스를 탔다. 서울에 머문 며칠 후 내가 태어나고 대학까지 다닌 고향 대구로 가는 길이다. 30년여 만이다. 기찻길 KTX는 올 때 사용해보자. 두 시간도 안 되는 기찻길 대신 3시간 반이나 걸린다지만 고국산천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성남 시외버스 터미널에 오후 1시에 출발하였는데 대구 서부 정류장 도착 시간이 7시다.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그날이 마침 어린이날, 부처님 날이 겹친 연휴 때문에 지체된 것이다.
그래도 지루한 줄 몰랐다. 버스 좌석은 마치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 같이 넓고 편안했다. 너무 많은 아파트 건설로 자연이 가리어졌다 해도 구름처럼 산 너머 산이 있고 산 사이의 마을과 흐르는 강물을 건너는 다리 다리를 지나면 터널을 통과하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얼마나 설레는 고향인가! 물론 이제는 부모님도 아니 계시고 일곱 형제들 중 여섯은 서울에 살고 바로 아래 누이만 있는 곳이라 해도 나를 키워준 곳, 내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곳 아닌가.
그 다음날이 수요일이었다. 수요예배는 내 영혼의 탯줄이었던 동성교회, 어릴 적 내 신앙을 키워주고 갈 길을 인도했던 교회, 아픔을 감싸주고 상처를 위로해주던 곳. 결국 신학교로 목회자로 키워 준 교회다. 찾아가기로 마음 정했을 때부터 셀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이 났다.
어린 소년에게 나무는 그늘이 되었고 놀이터가 되었다. 자라서 돈이 필요하다 하니 나무는 열매를 따서 팔아 돈을 장만해주었다. 좀 더 자라 집이 필요할 때 가지들을 잘라서 집을 짓게 했다. 나중 저 바다로 항해 하고프다 했을 땐 나무 등걸을 베어 배를 만들게 했다. 오랜 세월 바다를 항해하던 소년은 노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디에 앉을 수 있을까 쉴 수 있을까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왔을 때 나무는 남은 그루터기에 앉게 하고 노인은 나무에 앉아 기나긴 항해를 기억한다. 나무는 모든 것 주고서 모든 것 잃고서도 행복했다. 아무것도 되돌리지 못한 소년은 미안해하면서도 쉼을 주는 나무에 감사한다. 이 마음이 어릴 적 교회를 찾은 내 마음이었다.
황목사 집에서 택시를 타고 동인동 노타리까지 가자했더니 내려준다. 10,800원이다. 이곳에만 오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으리라. 대구시 동인동 1가다. 당시 우리 동네 세워진 동성교회는 작은 교회였다. 어른들은 50여명 그 대신 중고등부 학생들은 백여명. 당시 K 목사님은 총각이셨고 학생운동에 초점하셨기에 그러했다. 그 덕분에 이 작은 교회에서 수명의 목사님이 사모님들이 배출되었고 의사도 판사도 기업인으로 교수로 군 장성을 배출한 곳이다. 아니 무엇보다 방황하던 10대 소년기의 삶에 바른 길을 인도해주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걸음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라’(시37:23) 믿음을 심어준 곳이다.
그날 밤 수요예배에 20여명이 모였었다. 임목사라는 젊은 목사가 설교하는 동안 감동의 물결이 바다 물결처럼 물결친다. 내 영혼의 젖줄이요 아니 탯줄이 되어 준 교회. 긴긴 항해 끝에 이제 노인이 되어 50여년 만에 그루터기에 앉은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 이 작은 교회 한 번도 잊은 적은 없다. 생각만 하여도 어릴 적 순수했던 소년시대의 신앙으로 회복하는 듯한 교회 말이다. 창립하셨고 키워주신 K목사님은 이미 4년 전 고인이 되셨다. 시카고의 교회 문제만 아니었다면 장례식에는 참석했어야 했는데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이다. 이곳에서 신앙만이 아니다. K 목사님은 시인이셨다. 문학하시는 목사님이시기에 설교에는 늘 김소월이 어떠하고 윤동주가 어떠하고 강단에서 소개하는 문학 강의와 목사관에 있던 문학책들을 읽을 수 있는 특권까지 주셔서 어릴 적 문학적 정서는 그 목사관에 비치한 책들로 심겨진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임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나를 소개했다. 참석한 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한 사람 J는 알겠다. 우리가 학생회 회원일 때 훨씬 후배였는데 고향에 남아 봉사하며 나중 장로가 되었다 은퇴했단다. 그 J장로를 통해 아무개는 어떠하고 아무개는 죽었고 등등 소식을 들었다. ‘오신다고 연락만 했어도 여러사람 불러올 수 있었는데..’ 아쉬워했지만 본래 난 그런 성품이 되질 못한다.
모든 것 주고서도 기뻐해 준 교회, 하나도 되돌리지 못하면서 생각만 해도 안식을 쉼을 주는 교회, 그 영혼의 교회를 떠나면서 지녔던 현금 그대로 교회에 헌금하면서도 행여 이로 인해 오염되지는 말아야하는데 잠깐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