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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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일예배 1부 : 오전 8시 30분
  • 주일예배 2부 : 오전 11시
  • 금요예배 - 오후 8:00
  • 새벽기도 - 화 ~ 목 오전 5:45

가나안 교회

선교하는 교회 | 봉사하는 교회 | 교육하는 교회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그럼 전화 받으시는 분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 분이죠?” “예, 저는 전경입니다.” 아하! 전경은 전투경찰 아닌가? 결국 전화를 끊고 포기했던 것이다.미국에서 대구에 ‘근대 골목길 투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나고 대학까지 다닌 곳이지만 내가 살았던 동쪽은 알아도 서쪽은 모르는 데가 많고 하여 언젠가 고향에 가면 그런 골목길도 가보리라 생각했었는데 이번 여행길 그 중 두 번째 방문에서 실현했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그런 행사를 대구시 홍보센터가 한단다. 전화를했더니 “이곳으로 연락하세요.” 하며 특정 전화번호를 준다. 그곳에 했는데 다시 “저곳으로 연락하세요.” 다른전화번호를 준다. 세 번째 했는데 예의 그 전경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포기해버렸다.우연히 대구의 P 목사를 만나서 골목길 투어가 가능했던 것이다. P 목사는 미국에서 목회를 은퇴하고이 곳 고향 대구에서 특별한 사역을 하는 중이었다. 교회도 이 골목길 가까이고 미국 가기 전에 목회도 이 곳 가까이라 골목길 투어 가이드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 알았는데 이런 코스가 다섯 개가 있고 내가 가본 곳은 제 2 코스임을 알았다. P 목사 내외와 함께 대구의 몽마르트라는 제 2 의 근대 골목길 걸으며 많은 것을알았다.계산동 성당 앞에서 출발하여 제일교회를 지난다. 옆에는 잘 보존된 선교사 사택 겸 박물관도 지난다.선교사 가운데 스코틀랜드 고향에서 가져와 심은 사과나무가 지금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시에서는 문화제같이 보호한단다. 그 선교사 덕분에 한동안 사과하면 대구 사과다 하는 사과의 고장이 되었단다.

제 1 교회 백주년 기념관을 지나면서 좁은 골목 언덕을 내리는 90 계단이 나온다. 이름하여 3.1 로 길이다. 이 주위에서 3.1만세 운동이 대구에서도 있었단다. 역사적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역사 현장을 볼 수 있었다.3.1 만세 운동 길을 지나면서 한옥 두체가 나란히 보존되어 있다. 시인 이상화의 고택이고 재력가 서상돈의 집도 있었다. 오래전 한 사람이 “목사님 고향이 대구라면 달성공원의 이상화 시비에 어떤 시가 적혀있나요?” 묻기에 의례건 그러려니 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아닌가요?” 쉽게 답을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아니라서 얼굴이 화끈거렸던 때가 있었다. ‘마돈나’였다. 바로 그 시인이 살던 집이란다. 1948 년 최초의 시비가 달성공원에 있다면 나중 전 수성못 상단 공원에도 시비가 세워지고 ‘빼앗긴 들에도’ 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그 옆집이 대구가 낳은 거부 서상돈 고택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대구의 유력한 경제인으로 일제 때 ‘국채보상운동’에 앞선 사람이다. 더구나 대구의 웬만한 성당은 그의 헌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천주교의 중추역할이었단다.

선교사 박물관 옆에 청라언덕이 있고 작곡가 박태준의 시비가 있었다. ‘동무생각’이 비에 새겨져 있었다. 서쪽으로 계성학교 신명학교라는 대구 최고 명문 미션학교가 있었고 남으로는 지금은 계명 대학 부속 의과대학인 동산병원이 옛 의료선교사들이 남긴 교육 의료기관이 보인다. 이 계성학교에 박태준이 다녔고 아마도이 청라언덕길 따라 매일 학교를 다녔나보다. 어느 날 신명학교 다니는 얼굴이 백합 같은 여학생을 만나고 내성적인 그는 그녀를 짝사랑만 하게 된다. 그러다 박태준은 일본 유학을 간다. 돌아와서야 들은 소식은 바로 그 백합 같은 여학생도 졸업 후 일본 유학을 갔다 폐결핵으로 중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스물넷 나이에 죽었다는 소식이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나중 마산에 살던 친구 이은상에게 이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이실직고한다. 그날로 이은상은 시 한편을 보내주며 작곡을 부탁한다. 그래서 태어난 노래가 ‘동무생각’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 사라진다/’어릴 때 즐겨 부르던 동무생각이 바로 이런 숨은 슬픔이 있었구나. 이 박태준이 1925 년 잡지 ‘어린이’에 공모한 열두 살 소녀의 시를 작곡한다. ‘오빠생각’이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라’ 열두 살 소녀의 글과작곡가가 만났을 때의 신비한 가락이 지금도 우리들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비록 다섯 투어 중 한 곳만 다녔지만 새삼 내가 과연 대구사람인가 생각해본다.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 근대 골목길 돌아 내려 보니 이번에는 다른 골목길 다닥다닥 붙은 음식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 저녁은 P 목사 내외와 이 골목길 음식점에서 ‘한정식’을 먹으며 고향 이야기로 한참을 보내며 하루 일과가 끝이 난다.